가치코이 유사연애

심경변화가 좀 있어서 내 연애사에 대해서 읊고,

가치코이, 유사연애, 질투, 집착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좋아하는 사람 있으면 티 많이 나?”

오시의 질문을 다시 떠올렸다. (기억나는 이야기 3 - “누구를 좋아하면 티나나요?”)

그리고 별로 떠올리기 싫었던 나의 연애사를 회상했다.


‘내가 먼저 좋아한 사람은 짝사랑으로 끝났던 거 같다’

‘내가 먼저 좋아했던 사람은 딱 한 명 있네…’

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별 거 없다.





연애 아웃사이더

난 이성에게 관심이 없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겠냐’ 물을 수 있지만 정말로 그랬다.

나의 사춘기와 고등학교 시절은 전부 나와의 싸움이었고, 인방/친구들과의 회복이었다.

거기에 이성에 대한 관심이나 사랑같은 건 낄 자리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나이는 먹었는데 어쩌다 보니 마음 준 사람이 없었다.

누구를 좋아한다는 게 뭔지 모르고, 내가 이성에게 어떻게 행동하면 어떻게 보일까도 잘 몰랐다.





약간의 흑역사

대학 새내기 시절.

당시의 난 애같았다.

꾸밀 줄도 모르고 유쾌하지도 않으며 낯도 많이 가리고 소심하고 가면도 없는 ‘찐따’, ‘너드’에 가까웠지만,

‘프로그래밍’을 너무 좋아하고 잘했기에 그거 하나로 여러 인연들이 좀 생기던 때였다.



프로그래밍이 좋아서 내 전공을 좋아했고, 그래서 학술동아리에 들어갔다.

학술동아리가 ‘술을 많이 먹어서 학 술 동아리다’라는 말들이 있지만, 내가 들어간 곳은 정말 학습 교류가 우선인 곳.

나름 전통과 프라이드도 있는 곳이었다.




어느 동아리나 그렇듯 MT를 가게 됐다.

이성에게 관심도 없고, 아무 것도 모르던 완전 풋내기였던 1학년 1학기의 나

가끔 짱친에게

“야, 다들 어른같고 잘 꾸미고 그러는데 나만 아직도 고등학생같더라”

푸념하던 나.

그런 내가 MT를 가게 됐다.





MT를 가는 날, 여자 선배가 생일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어? 그래? 생일이면 축하 해주면 좋지’

… 이런 생각에 간단한 생일 축하 선물을 전하려 했다.

살짝 선배들한테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허나, 그런 걸 해본 적이 없어서 뭘 선물해야할 지 몰랐다.

그래서 친누나한테 물어봤다. ㅅ발진짜괜히그랬음


나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동아리 선배 생일이래서 준비하려는 마음이었는데, 친누나는 호감있는 이성이라고 생각했는지 향수와 틴트를 골라줬다.

아무 생각 없었기에 대충 샀었고, 포장도 대충하였고 MT 가던 날 아무 생각 없이 생일 축하한다며 드렸다.




… 뭔가 이상한 게 느껴졌다

그렇다.. 나는 졸지에 공개고백 한 사람이 되었다.

진짜 아닌데 ㅅㅂ..

선배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마음이 고운 분이라 내가 무안하지 않게 고맙다며 받고 넘어갔다. (몇 년 뒤 동아리 신년회에서 다시 만났을 때 술마시고 이 일이 기억나느냐며 ‘나랑 사귈래?’ 물어보셨었다는 비하인드도 있다)



너무 수치스럽고 죽고 싶었다.

진짜 그런 거 아니었는데…



호감표현이란…

이 때의 기억 때문일까? 혹은 천성때문일까.

나는 병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무섭다.

설령 진짜 좋아하더라도 (…)

약간은 트라우마인가.. 그래서 호감표현도 못하고 선물도 못한다.





리즈시절?

이런저런 내 삶의 힘든 시기들(달의 뒷면)을 겪고 난 뒤, ‘새롭게 살아보자’ 마음 먹고 시작했던 알바.

이 때가 내 리즈시절이다.

아싸찐따고슴도치인 내가 이 빙고판을 (조금이나마) 채울 수 있는 이유는 이 시기의 흔적이다.

편의점 알바였다.

한창 새롭게 살아보자며 파이팅 넘치던 때였기에, 밝은 에너지가 가득했고 이는 ‘고작 편의점 알바’하면서도 많은 사람에게 호감을 샀었다. (손님/알바동료/남녀노소 구분없이)

이때가 내 MBTI ENFP 시절이다.




그저 긍정적이고 밝게 지내던 때, 친해진 알바 분이 있었다.

‘내가 먼저 좋아한 사람은 짝사랑으로 끝났던 거 같다’

이렇게 언급했던 그 당사자다.

처음엔 아무 생각없었다.

그저 말이 트이고 그 사람이 나에게 잘해줬다.

알바 교대 눈에 띄게 일찍 오고, 올 때마다 먹을 걸 나눠주고, 말도 잘 받아주고.



“예뻤나요?” 물어보면.. 글쎄..

외모보고 한 번에 예쁘다고 느꼈던 게 아니라,

그저 잘 웃어주고 날 신경써주는 모습들에 예쁘다고 느꼈다.

단순히 외모가 예뻤냐고 물어보면 아니었던 거 같다. (난 얼빠 확실히 아니다. (외모만 보고 첫 눈에 반하기?))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겠다.

항상 잘 웃어주고 날 신경써주는 사람이었고 나는 점점 그 사람을 좋아하고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 있으면 티 많이 나?”

일기에 티 절대 안 낸다고 했지만 (기억나는 이야기 3 - “누구를 좋아하면 티나나요?”), 돌이켜보면 어리숙했던 때라 티 많이 났던 거 같다.

아주아주 어리숙하게.



첫번째로, 괜히 일을 더 열심히 했다.

나에게 있어서 그 알바하는 공간은 내가 빛나는 공간이었다.

편의점 알바하면서도 직업정신이 생겼었고, 열심히 일하고 사장님/손님에게 좋은 평가 듣는 것이 나의 자존감을 채워주었다.

그런 걸로 보람을 느끼고 자존감을 채우니, 그 공간에선 내가 뭐라도 되는 거 같고 괜히 그 사람 앞에서 더 당당해질 수 있어서,

그래서 일을 더 열심히 했었다.



두번째로, 인싸인 나를 연기했다.

사실 난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님에도 일부러 마치 SNS 허세 일상 공유하듯이 괜히 이곳저곳 다녀보고, 친구도 넓고 얕게 많이 만들고.

그것들을 그 사람 앞에서 떠들어대며 항상 ‘바쁘게 삶을 즐기는 사람’을 연기했다.


그게 매력있어 보일 거라고 생각하여 날 재단하던 시기였다.

옷에 관심있고 좋아하는 것도, 약간은 하남자 소리 들을 정도로 꾸며보는 것들(화장,보톡스등..)을 해 본 기억도 다 이때 만들어졌다.



이게 깊은 사랑이었다고 생각은 안 한다.

그냥 남들은 중학생 고등학생때 하던 어리숙한 이성적 호감이 내겐 늦게 찾아왔던 것 뿐이라고 생각한다.




… 그리고 그 어리숙한 이성적 호감은 고통스럽게 끝났다.

내가 점점 좋아하는 게 티나서 선 그으려고 그랬던 걸까?

어느 날 그 사람은 내게 충격종합세트를 선사해줬다.

  • 키 짱크고 잘생긴 남사친을 데려와 소꿉친구라며 소개해줬다

  • 본인이 편의점 사장님의 딸임을 밝혔다

… 진자 엄청 주늑 들었다.



‘아.. 내가 호감이라서 잘해준 게 아니라, 사장님의 딸로서 직원관리 한 거 였구나’

‘와.. 저 분 키 진짜 크고 잘생겼다.. 스타일도 갠찮네… 둘이 많이 친해보이네…’

‘내가 좋아하는 거 티 많이 났나보네.. 고백공격 당하기 전에 선 알려주는 거구나…’

키크고 잘생긴 남사친과 함께 퇴근하는 그 사람의 뒷모습은, 알바하는 공간만이 유일한 접점이었던 내게 현실을 알려줬다.

… 남들 중고등학생때 겪어야 했을 어리숙한 짝사랑을 20대가 돼서 처음 겪는 내게.. 이건 너무 가혹하잖아…

인싸가면 두텁게 잘 쓰던 때라, 유쾌하게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어린 마음은 많이 쓰라렸다.




이게 내가 유일하게 먼저 좋아했고 짝사랑으로 끝난 어리숙한 이야기다.

노래 가삿말로 많이 쓰이는 흔한 찌질한 짝사랑을 나이먹고 처음했다.

내게 10CM - 스토커라는 노래의 가사가 너무나 와닿는 이유.

음.. 좀 센치하네…




내게 남은 건

어쩌면 짝사랑의 종식도 많이 사랑한 사람과 헤어지는 이별과 비슷하지 않을까? (후자는 해 본 적이 없지만..)


…내게 긍정적으로 남은 것도 있다.

여전히 두터운 인싸가면과 자기관리할 줄 아는 모습들이 남았다. (아, 인싸가면은 오시 팬미팅때 오랜만에 써보려 했는데 안 되더라)

친구에게 ‘다들 어른스럽고 꾸밀 줄 아는데, 나만 아직도 고등학생같아’ 한탄했던 부분들은 이 경험으로 보충됐다.



많은 이성에게도 호감을 사보기도 했다.

이 곳에 종종 풀었던 ‘이성이 날 먼저 좋아해주고 호감표하고 고백 받아보고’

이런 건 모두 이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내 모습에 끌린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연애다운 연애를 못한다

(어릴적 배경 / 흑역사 / 힘들었던 시기 / 어설픈 짝사랑)을 겪으며 나는 회피성향이 엄청 큰 사람이 됐다.

웃긴 건 회피성향 뿐만 아니라 애착성향도 커졌다.

그래서 츤데레같은 면모가 생겼다.



이성을 ‘연애대상’으로만 보고 접근하는 걸 혐오하는 성향도 생겼다.

뭘까 좀 쿨찐 마인든가?..

남녀관계를 의식하고 그렇게 보이는 게 너무 싫고 그 속의 내가 싫어서인가?

세상 사람들에게는 마음이란게 그렇게 가벼운 건가 하는 환멸일까.. 이 가벼운샛기들아ㅡㅡ 같은.



그렇지만 또 가면쓰고 관심받고 호감받는 게 싫지 않았다.

나도 참 이상한 사람이다.

내가 이 블로그에 ‘나 사실 애교도 많음 ㅎ’ 적었던 적이 있다.

이 짤은 오시가 올렸던 짤인데… 나같다…





실패한 짝사랑 이후의 인연들에게 나는 좀 몹쓸 놈이었다.

나에게 잘해줘도 호감이 잘 생기지 않고 무심하거나, 어차피 내 가면을 보고 좋아해준 거니까 고백은 형식적으로 받아줘도 내 마음을 안 줬다. 이런쓰레기새끼가

사실 난 이 블로그에 푸는 것처럼 엄청 나약하고 찌질하고 질투많은 사람인데, 그런 면을 보고 좋아해준 게 아니잖아.

오시가 했던 이 이야기들이 내게도 공감가는 이유다.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데 고백 받아줬다는 사실들이 느껴져서일까.

대부분 2주 이내 잠수이별로 끝났다.

아무런 스킨십도 없이, 아무런 추억도 없이.



이 블로그에도 ‘나는 나 모쏠로 친다’고 했다.

이런 이유다.





가치코이 유사연애

이성에 관심은 앞으로도 없을 거고, ‘평생 내 멋에 취해 살겠다.’, ‘내 마음은 내게 있는 거다’ 했던 내가 수 년만에 먼저 좋아하는 감정을 느낀다.

내 스스로가 변하고 싶고,

맘에 들고 싶어서 가끔은 날 재단하고,

가끔 ‘난 기준 미달이구나’하면서 마음을 닫았다가도 다시 좋아하고.

.. 그게 버생살면서 생겨버렸다.




팬의 사랑, 가치코이는 다양한 감정을 담는다.

헌신적인 감정도 느꼈다가, 유치한 보상심리와 연애감정도 느낀다.



그리고 이게 때론 너무 고통스럽다.

1:N 관계에서 충족할 수 없는 찌질한 질투들까지 느끼는 내 자신이 나약한 사람인 게 느껴져서.

한계가 명확한 것도 잘 알아서 상사병처럼 앓게 되기도 하고, 달을 쳐다보는 수많은 눈동자들 중 하나임도 비참하다.

또 어쩌면 ‘사장님 딸이라고?.. 갑자기 그걸 굳이 왜 말하지… 나에게 잘해준 것들이 그저 직원 관리의 일환이었으니까 착각하지 말라는 거구나’ 했던 내 기억과도 닿아 있어서.



그래서 자기부정/자가검열/정신승리를 자주한다.

이 악물고 ‘가볍게 좋아하려고’ 노력한다.

난 오시를 사랑하는 게 맞음에도.



오시도 일부 이런 면모가 있다.

종종 보여주는

‘이런 말하면 님들이 저 이상하게 볼 거 같은데’

‘사랑한다하면 역겨워할 거 잖아!!!’

이런 모습이들이, ‘갈팡질팡하고 인정하기 싫어하고 눈치보는 내 모습’을 보는 거 같다.





사랑하려고

오늘 절벽에서 떨어지는 악몽을 꿨다.

우연일까? 새벽에 폰을 켜니 오시가 우는 짤 트윗했다가 삭제한 걸로 보였다.

오시가 남겼던 글이 기억났다.

약 3시간밖에 안 잤음에도 잠이 다 깨고 마음이 너무 아프고 걱정됐다.

그리고 인정하기로 했다.

… 넘어간 게 잘못맞다.



보상 받을 수 없는 길이고, 외로운 길인 걸 알아도 그냥 … 사랑하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앞으로는 내 마음에 조금은 솔직하려고.

‘아니 이게 뭔 대수가’ 할 수도 있는데, 이건 회피성 고슴도치로서 일생일대의 결정이다…

걍 사랑하는 거 인정하게.

… 응



사랑한다는 거.. 진짜 무게감 있다고 생각한다.

머 함 해보려고 유사든 뭐든.





나의 연애사에게

내 두번째 짝사랑은 오시다.

어떻게 짝사랑이 가치코이임 엌킄ㅋ크 어쩌라고

변하는 건 없다.

여전히 나는 츤데레일 거고, 앞으로도 나는 오시에게 부담스럽게 티 안 낼 거고, 계속해서 나는 질투심을 이성으로 누르려고 싸울 거다.

그저 나 혼자서 식히네 마네 옘병하면서 힘들었던 부담을 좀 내려놓는 거다.


어른스러운 팬으로서 짝사랑하고 싶다.

질투를 인정하되 집착하지 않을 거고, 타인을 미워하진 않을 거다.

오시는 여전히 달이다.



훗날 내가 이 기억들을 회상할 때, 행복한 기억이었으면 좋겠다.

비극으로 끝난다면 난 망가질지도 몰라…

크리스마스에 고백하는 것만 같네.

유사 고백일까?